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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바다』#1, 칼 슈미트

옛날부터 바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인간이 체험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어. 바다는 뭍에 사는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었지. 육지에 비해 시시각각 변화무쌍하지만 그 속은 알 수 없으니까. 그 두려움이 구체화돼서 해신 신앙이나 바다괴물 전설 같은 게 생겨나기도 했겠고, 심해에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들이 괴물로 오인되기도 했지. 대표적으로 (지금 와선 유명무실해진) 고래나 대왕오징어가 그랬어. 우리나라에서도 1996년엔가 대왕오징어가 발견된 적이 있는데, 불길한 징조라고 토막 내 바다에 버렸다고 해. 


작년 바다숲 살리기 캠페인 시작할 때 바다숲의 “가시화”를 당면 과제로 받아 안았어.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으니 바다숲이란 게 있기는 한 건지 실감도 안 날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에 대해 축적된 지식이나 데이터가 너무 없는 실정이니까. 그런데 따옴표를 친 표현들과 “바다숲의 가시화”라는 방식에는, 바다 밖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스탠스나 ‘시각’ 이외 다른 감각들이 퇴화한 인간 감각체계의 실태가 내포돼 있어서, 우리가 무언가를 체험하고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하게 해. 바다에서 수영이나 서핑 같은 걸 하면서 발 딛을 바닥이 없다거나, 몸을 에워싼 물의 압력과 저항, 부력과 물결을 이용해 움직여야 하는 공간이라는 식으로, 뭍의 기준으로 비교함으로써 가능한 체험을 하며 잠시 머무를 뿐이 아닌가 하는. 오늘 소개할 책에 나오는 관점을 따르면, ‘땅’이라는 “원소”가 인간을 가장 크게 규정하고 있기에(그러고는 과연 그렇기만 한가라고 반론을 펼치는 격이긴 해.) 그렇다고 할까. 


칼 슈미트의 『땅과 바다』는 세계사(서구 유럽 문명)를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의 역사”라는 관점으로 풀어내는데, 책 첫머리에, 인간이 그 거주지를 이루는 주요 “원소”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는 사유가 흥미로워. 인간의 역사를, 인간의 지각체계나 인간들끼리의 관계 등이 아니라 ‘원소’의 각인으로 이야기하는 것, 그러니까 물질적 상상력을 인간들이 지극히 인간적으로 아웅다웅하는 한복판에 갖다 놓은 것이. 또한 인간의 감각과 생각으로 알 수 없는 영역이기에 (두려워서) 미개하고 불길한 것으로 취급되어온 바다의 힘을 대지의 힘과 대등한 차원으로 (감히(?)) 끌어올린 것도.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나는 때는 보통 좋지 않은 경우야. 뭔가 잘못되었을 때, 아플 때. 그렇다고 원래대로, 드러나지 않은 채로 존재하는 것이 좋은 걸까? 바다숲, 플랑크톤, 바이러스, 무의식 같은 것들은 신비하기도 하지만 죄나 질병의 이미지와도 연결이 돼. 죄나 질병은 죄의식과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뭔가를 보여주려고 나타나는 측면이 있어. 난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느껴. 바다 사막화를 비롯해 점점 더 가시화되는 기후 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현 상황을, 우리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있던 것들과 의식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국면으로 보고 있어. 이것을 얼마만큼 인식하느냐에 따라 상황의 또 다른 차원이 열리지 않을까 하고.



인간은 땅의 존재, 땅을 밟고 있는 존재다. 인간은 견고하게 정초된 대지 위에 서서 걸어가고 움직이지. 그 대지가 그가 서 있는 곳이자 그의 토대다. 그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시점을 얻으며, 이것이 그가 받는 인상들,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규정하지. 가시범위 뿐만 아니라, 인간이 걷고 움직이는 형태, 그 형상도 대지에서 태어나 대지 위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로서 얻어진 거야. 그렇기에 지구 표면의 4분의 3이 물로 덮여있고, 땅은 4분의 1 뿐이라 사실상 가장 큰 대지도 섬처럼 물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별을 “대지-지구(地球)Erde”라고 부르고 있지. 대지Erde가 구(球) 형태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 후 우리는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이 별을 “대지 공Erdball” 또는 “대지 구슬Erdkugel”이라 부른단다. 이런 방식으로 “대양 공Seeball”이나 “바다 구슬Meereskugel”과 같은 것을 떠올리는 건 어딘가 어색하지? 우리의 모든 존재, 행복과 불행, 기쁨과 고통은-누군가에게는 지상의 낙원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상의 눈물골짜기이기도 하겠지만-어쨌든 모두 “지상의irdische” 삶이지. 여러 민족들의 가장 오래된 기억과 깊은 시련을 표현하고 있는 신화와 전설들에서 대지Erde가 인간의 위대한 어머니로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대지는 신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신으로 지칭되지. 성경은 인간은 대지로부터 왔고 다시 대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 대지가 인간의 모성적 토대라면 인간은 대지의 아들이고, 사람들은 대지의 형제이자 대지의 시민들인 셈이야. 대지(흙), 물, 불, 공기라는 전승된 4원소론에서 대지(흙)가 인간에 상응하고 인간을 가장 크게 규정하는 원소인 것도 이 때문이야. 이러한 사정이다 보니 인간이 대지를 통해 각인되어 있는 정도만큼이나 다른 원소들에 의해서도 각인되어 있다는 생각은, 얼핏 생각하면 터무니없어 보이지. 물고기도, 새도 아니고, 그런 게 존재하기나 한다면 불로된 존재도 아닌 인간에게 무슨 소리냐고.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렴.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핵심에 있어 순전히 대지적erdhaft이고 대지와만 관계하며, 다른 원소들은 그저 대지에 덧붙여진, 부차적 지위만 갖는 것일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단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순수하게 대지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생각보다 많이 제기되고 있으니 말이야. 해변에 가서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압도적인 넓이의 바다가 너의 시선의 지평을 둘러싸고 있는 걸 보게 될 거야. 해변가에 서 있는 인간이, 당연한 말이지만, 땅에서부터 바다를 바라보지, 바다에서 땅을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지 않니?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무의식적인 인간의 기억 속에서 물과 바다는 모든 생명체의 비밀스러운 원천Urground인데 말이야. 대부분 민족들의 신화와 전설에는 대지에서 태어난 신과 인간 뿐 아니라, 바다에서 탄생한 신과 인간도 등장하지. 또 바다Meeres와 대양See의 아들, 딸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도 있단다. 여성적 아름다움의 신 아프로디테는 파도의 거품 속에서 태어났지. 그런데 바다는 이 외의 다른 자식들도 낳았단다. 나중에 우리는 “대양의 자식들”을 비롯해서, 거품에서 탄생한 미녀라는 멋진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야만적인 “대양 주름잡이들”에 대해서도 알게 될 거야. 거기에서 우리는 불현 듯 대지나 견고한 땅과는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된단다.


칼 슈미트, 『땅과 바다』, 김남시 옮김, 꾸리에(2016), p.7~9

(발췌/코멘터리: 현지예)

<바다책_갈피>는 "바다숲 알리기"의 일환으로, 관련 책에서 발췌한 구절을 공유하는 코너예요. 무수히 많은 책들의 숲에서 바다, 섬, 바다숲 등에 관한 이야기를 건져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