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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너머 세상을 보여주는 남태평양신화』, 이경덕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덮고 있는 바다는, 평균 수심은 약 3.7㎞, 지구 전체 바닷물 양은 약 13.5억㎦로, 넓고 깊고 많은 공간 이미지를 갖고 있어. 하지만 인간 관점에서 그렇고, 지구 입장에서 바다는 “얇은 막에 불과한 존재”라 할 만큼 그 양이 그리 많지가 않아. 한 잡지*에서 이러한 “바다의 얇음”을 삶은 계란에 빗대어 설명하는데, 지구 반지름(약 6400㎞)에 대한 바다의 평균 수심(약 3.7㎞)의 비율은 약 0.058%로, 삶은 계란(계란 반지름 3㎝, 계란 껍데기 두께 약 0.3㎜, 난간막 약 0.07㎜)으로 치면 껍데기 깔 때 보이는 반투명한 막보다도 훨씬 얇은 수준이라는 거야.


그럼 그 아래는? 맨틀은 아래로 갈수록 물성이 연하긴 해도 고체니까, 바다 아래 땅이 있는 건가? 외핵은 액체, 내핵은 고체(내핵은 온도가 외핵보다 높지만 엄청나게 큰 압력이 작용해서 분자가 활발히 움직이지 못하고 고체 상태로 있게 돼. 녹는점이 훨씬 높아진다고 볼 수도 있지.)라는데, 그럼 다시 바다에 이르고 또 다시 땅에 이른다고 볼 수 있는 건가? 그렇진 않아. 바다나 강이 지구 표면을 살짝 덮고 있는 물인 것처럼, 땅이라는 건 물이 있는 곳을 제외한 지구의 ‘겉면’을 이르는 거거든. 결국 ‘땅과 바다’라는 구도는 그야말로 ‘피상적인’ 관점인 거지. 지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세계보다 훨씬 더 심오한 곳이야.  


하지만 ‘표면’이야말로 존재하는 것의 토대가 아닌가? 생물학적 막이나 사회·문화적 경계가 대체로 어떤 존재를 규정하면서 바깥과 교류하게 하는 장소이듯이, 이 얄팍한 땅과 바다는 지구 정체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대부분의 지구 생물에게는 오랜 기간 세상의 전부와 같았어. 인간의 경우 오지랖이 꽤나 넓어져서 여기저기 답작대긴 하지. 땅을 파고 고층 빌딩을 세우더니 38.5만㎞ 떨어진 달에도 다녀왔고, 무인우주선이긴 하지만 두 대의 보이저 탐사선들이 현재 1,2호 각각 22700000000㎞, 18800000000㎞ 정도 떨어진 태양계 밖에서 소식을 보내오고 있어. 그렇더라도 인간의 서식지는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제한적이고, 해저는 맨몸으론 수심 100m 정도까지 내려갔다 올라올 수 있을 뿐이야. 그것도 영화 <그랑블루>의 쟈끄와 엔조처럼 매우 숙련된 프리다이버의 경우에나. 


태양광 중에 파장이 짧아서 바다 속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파랑이나 남색이 바로 “그랑 블루”야. 영화의 엔딩씬에서 주인공 쟈끄가 사라지는 심해의 푸른 어둠이지만, 그조차 사라져 빛이 아예 들지 않는 수심 약 1000m 이하는 어떤 면에선 우주보다도 미스테리한 곳이야. 물론 최근에는 잠수 조사선이 수심 1000m 훌쩍 아래까지 유/무인으로 내려가서 그곳의 물리적 환경이나 (광합성에 의존하지 않는) 생태계를 연구하고 있다고 하니, 인간은 표면의 심오함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할까. 그리고 그 심오함의 추구는 어쩐지 계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이번에는 날계란을 열수 분출공(해저에 침투한 바닷물이 마그마에 의해 뜨거워져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가지고 들어갔더라고. 예상과 달리 계란은 엄청난 수압에도 깨지지 않았고 반숙으로 익었다고 해.   


오늘은 “달이 떨어져나간 자리”일지도 모르는 태평양의 창조 신화를 소개할 거야. 남태평양의 깊은 바다 속에 하필 또 계란의 세계가 있다고 하네. 계란 세계 속에서도 한 구석에 웅크린 최초의 여자가 아이들을 낳아. 달(!), 물고기, 새, 바위, 바람, 지식, 침묵, 이런 것들이 태어나면서 계란 내외부가 채워지고 깊어지더니, 땅위에는 어느 새 사람들이 생겨나 있어. ‘이야기’라는 건 ― 특히 최초의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서 누가 누구로부터 태어났고, 이름과 종과 성별은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고 어떤 일을 맡는지 등등 아주 피상적인 것에 관해 말해. 대개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졌고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 우리 껍데기 말야. 인간은 이런 껍데기쯤 하찮게 취급하거나 벗어나고픈 굴레로 여기며 심오한 본질을 찾지만 껍데기야말로 본질적인 것, 존재의 조건이 아닐까? — 그러한 표면의 깊음을 이야기해. 그래서 이야기는 아직도 종종 마음이라는 또 하나의 표면을 찌르고 어루만지나봐.


* 첫 번째와 네 번째 문단은「Newton highlight 바다의 탄생, 해류와 기상, 해양 자원부터 심해의 세계까지 바다의 모든 것」(2017)의 내용을 참조함.



먼 옛날 남태평양 어느 곳에 최초의 여자가 있었습니다. 최초의 여자는 바로 바다의 여신입니다. 최초의 여자는 바로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은 영원한 침묵의 나라에 있는 계란의 세계 한구석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아주 좁은 곳이었습니다. 얼마나 좁은가 하면 무릎 위에 턱을 올려놓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최초의 여자는 이렇게 좁은 곳에서 무려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가운데 세 명은 왼쪽 옆구리로 낳았고 나머지 세 명은 오른쪽 옆구리로 낳았습니다. 가장 먼저 낳은 아이는 최초의 남자 달 신이었습니다. 


최초의 여자는 달 신이 태어난 뒤 아이가 크기를 기다렸다가 몸을 세로로 나눠 왼쪽은 물고기, 오른쪽은 사람의 모습을 가진 물고기 남자를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영원한 침묵의 나라 계란 속에서 태어난 달 신이 바다의 바깥 세계로 통하는 입구를 발견했습니다. 달 신은 그곳에 이름을 붙이고 자기 집으로 삼았습니다. “이 곳을 ‘밝은 달 아래’라고 부르겠어.”


최초의 여자가 오른쪽 옆구리로 낳은 두 번째 아이는 물고기를 돌보는 신이 되었습니다. 물고기 신이 사는 집은 달 신이 사는 곳의 바로 아래에 있는 신성한 섬이었습니다. 물고기 신은 그 섬에 있는 큰 연못에 사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를 돌보며 살았습니다. 물고기 신도 달 신처럼 오른쪽은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왼쪽은 멸치의 모습을 한 물고기 남자였습니다. 


세 번째 아이는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는 물고기 신이 사는 신성한 섬의 바로 아래에 있는 붉은 앵무새의 깃털 나라에 살았습니다. 네 번째 아이는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나 허공에 있는 회색 바위의 나라에 살았습니다. 다섯 번째 아이는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는데 그 아이의 집은 바다 깊숙한 곳에 있었습니다. 최초의 여자는 이 아이에게 바람이 가득 든 자루를 주었는데 그 바람은 훗날 다섯 번째 아이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아이는 사람들을 돕거나 여러 가지 지식을 알려주는 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에게는 지평선 끝에 구멍을 하나 뚫어주어 그곳을 통해 지나다니게 했습니다. 


막내인 여섯 번째 아이는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영원한 침묵의 나라에 살며 어머니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경덕, 『바다 너머 세상을 보여주는 남태평양신화』, 공수진 그림, 현문미디어(2006), p.10~14



(발췌/코멘터리: 현지예)

<바다책_갈피>는 "바다숲 알리기"의 일환으로, 관련 책에서 발췌한 구절을 공유하는 코너예요. 무수히 많은 책들의 숲에서 바다, 섬, 바다숲 등에 관한 이야기를 건져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