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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바다』#3, 칼 슈미트

추석 연휴 이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있어. 연휴에 강원도 지인 집에 머무르면서 들과 강, 산과 바다를 누비다가 서울 집으로 돌아왔는데, 왜인지 정신이 없어. 한 이틀은 너무 피곤한데다 눈알이 뻑뻑하고 눈물 콧물이 줄줄 흐르는 증상에 안과에 갔더니 안구건조증이라고 인공눈물을 처방해줬어. 모처럼 시야가 탁 트인 곳에 적응했던 눈이 노트북과 휴대폰 화면에 피로를 느낀 걸까? 여튼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무엇부터 해야 하나 갈피를 못 잡다가, 전에 두 갈피 올렸던 책 접힌 곳을 펼쳐서 필사했어.

 

옮겨 적었다거나 베껴 적었다라고 하지 않고 ‘필사’라고 한 것은, 이전에 <필사적 퍼포먼스>라는 작업을 했어서 이 단어와 친애하는 관계이기 때문이야. 여기서 ‘필사’는 筆寫이자 必死. 죽을힘을 다해/죽음을 각오하며 베껴 쓰는 퍼포먼스였지. 그 당시 실제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거든. 2018년 요맘때 아기를 낳고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책을 읽게 되었어. 그중 엄마-작가들이 ‘엄마됨’에 관해서 쓴 글을 모은 책이 있었는데, 엄마됨을 둘러싼 폭력들을 드러내는 폭력적인 글들이었지. 글 자체가 폭력적인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어. 시적이면서 현실적이었으니까. 그런 책들을 잔뜩 쌓아두고 2019년 10월 10일 임산부의 날에 당시 일하던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 벽에 필사하는 퍼포먼스를 했지. 연습 같은 거 없고 그냥 한 거였는데, 글을 타이핑하다보니 엄마-작가들의“분노와 애정”(그 첫 책 제목)이 온몸으로 흘러오고 흘러오고 하는 거야. 어떨 땐 하염없이 눈물이 났는데, 그러든지 말든지 꼿꼿하게 앉아서 필사를 해가는 게 좋았어.

 

그 이후 점점 더 책을 많이 읽게 되었고, 일상적으로 필사를 해. 글과 보다 직접적으로 만나고 싶을 때, 글귀를 내안에 새기고 싶을 때,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어디론가 가고 싶을 때. 실은 바다책_갈피 하면서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었어. 좋은 글에 사족을 다는 것 같았기 때문이야. 글이든 뭐든 자기가 직접 만나야 좋은 건데, 내 설명이나 감상 같은 것이 그걸 저해하는 것 같았어. 무언가를 만나게 됐을 때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렇게 만나게 된 자기 상황이 거기 작용하는 건데 말이야. 또한 이런 글들로 바다숲, 섬, 바다에 관해 뭘 알(릴) 수 있다는 거냐 라는 부끄러움도 있었어. 이번 갈피가 이와 닿는 이야기이기도 해. 내가 한 얘기와는 영 다른 ‘고래사냥’에 관한 거지만, 당시의 그건 인간과 고래의 ‘필사적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겠어. 3중의 의미로 말이지. 필사적이라는 건 '나'와 '너'가 대면한다는 거야.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고래 사냥꾼이라면 자신의 항해일지에 쓰지 않을 것들에 대해 쿡 선장은 책을 썼다” 이 부분 너무 통쾌해! 쿡 선장이나 나나!!



1914~1918의 세계대전 이래 “해수(海水)적pelagischen” 포획법이라는 이름하에서 생겨나 점점 정교해진 고래잡이 기술은 더 이상 사냥은커녕 포획이라고도 부를 수 없어. 오늘날에는 전기 기계장치, 대포, 화약, 정찰기, 음향 및 무선 감지기로 무장한, 항해하는 주방이기도 한 3만 톤에 육박하는 거대 선박들이 남극의 빙하로 향하지. 고래들이 그리로 도망가기 때문이고, 죽은 고래들을 배 위에서 즉시 산업적으로 가공하기 위해서야. 이 속도라면 불행한 리바이어던은 얼마 안 가 우리 행성에서 거의 사라져버릴 거야. 마침내 1937년과 1938년 런던에서 고래 포획에 일정한 규제를 가하고, 포획 구역의 구분 등을 합의한 국제협약이 체결되지. 아직 살아남은 고래들만이라도 이 무분별한 근절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였어.


이와 비교해보면, 내가 말하는 고래 사냥꾼들은 단순한 포획꾼도, 그렇다고 기계적인 고래도살자도 아닌 진정한 사냥꾼들이었어. 그들은 북극이나 대서양 연안에서 범선과 노 젓는 보트를 타고 광활한 세계 바다의 공간들을 관통해 사냥감을 쫓지. 이 사냥꾼들이 강하고 영리한 바다 거구와 싸움을 벌일 때 쓰는 무기란 고작해야 손으로 던지는 작살이었어. 말하자면 이것은 동물학적 분류상의 물고기가 아닌 두 생명체들이 바다의 원소 속에서 움직이는, 목숨을 건 싸움이었던 거야. 당시 이 싸움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수단이라고는 근육의 힘으로 움직이는 돛과 노, 그리고 죽음을 부르는 발사체인 작살이 전부였단다. 고래는 꼬리를 내려치는 것만으로도 보트와 배를 산산조각낼 정도로 강해. 인간의 계략에 수천 가지 계략으로 맞서기도 하고. 수년간 포경선 수병으로 일한 바 있던 허먼 멜빌은 『모비 딕』에서 이 싸움의 과정에서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에 거의 “개인적인 관계”라고 까지 말할 수 있는 미묘한 적대와 동지적 결합이 어떻게 맺어지는지 묘사하고 있어. 바다에 사는 다른 생명체와의 이런 투쟁을 통해 인간은 점점 해상적 실존의 원소적 깊이까지 빠져들게 되었던 거야.


고래물고기 사냥꾼들은 지구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범선을 타고 항해했어. 늘 베일에 가려진 고래의 경로를 쫓으면서 섬과 대륙을 발견해도 그를 떠벌리지 않았지. 멜빌의 소설에서 항해자 중 한 명은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한 쿡 선장의 책을 읽더니 이렇게 말하지. 고래 사냥꾼이라면 자신의 항해일지에 쓰지 않을 것들에 대해 쿡 선장은 책을 썼다고. 미슐레는 인간에게 해양을 계시해준 것이 누구인가라고 묻지. 누가 해양의 지대와 해로를 발견하였나? 한마디로, 누가 지구Erdball를 발견하였는가? 고래와 고래물고기 사냥꾼들이야! 콜럼버스 없이도, 북쪽이나 브르타뉴와 바스크 출신의 어부들이 먼저 발견한 것을 소란스럽게 재발견할 뿐인 유명한 금 채집자들 없이도 이 모든 것을 행했던 거야. 계속해서 미슐레는 이 고래물고기 사냥꾼들이야말로 인간의 용기를 가장 숭고하게 표현한다고 덧붙이지. 고래물고기가 없었더라면 어부들은 언제까지고 해안에만 들붙어 있었을 거야. 고래가 그들을 유혹해 해양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해안에서 해방시켰던 것이지. 고래를 통해 인간은 해류를 발견하고 북쪽의 관통로를 발견했어. 고래가 우리를 안내했던 거야


칼 슈미트, 『땅과 바다』, 김남시 옮김, 꾸리에(2016), p.38~42.

(발췌/코멘터리: 현지예) 

<바다책_갈피>는 "바다숲 알리기"의 일환으로, 관련 책에서 발췌한 구절을 공유하는 코너예요. 무수히 많은 책들의 숲에서 바다, 섬, 바다숲 등에 관한 이야기를 건져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