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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통한 시간여행』#3, 프랭크 섀칭

예전에는 근사한 담뱃갑들이 꽤 있었지. 그 중에 물 내뿜는 흰수염고래가 그려진 게 있었어. 언젠가 그 이미지를 두고, 대체 담배와 고래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글을 sns에서 본 적이 있어. 그 댓글에는, 담배 연기 내뿜는 모습이 고래가 수증기를 뿜는 모습과 닮았다, 고래가 심연으로 들어갈 때 느끼는 게 담배 태울 때 촤악 가라앉는 그 기분이 아니겠냐 하는 얘기들이 있었어. 내 답은 filter. 흰수염고래가 먹이 먹을 때 필터링을 하잖아. 담뱃갑에 버젓이 “FILTER CIGARETS”라고 쓰여있기도 해서 확신에 차서 답했지. 담배 필터가 발암 물질들 걸러주는 걸 꽤 근사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어. 나중에 알아본 바로, 담배 회사의 디자인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지만, 그런 우연의 일치야말로 의미심장해서 여러 모로 그 디자인이 퍽 마음에 들었어. 당시에는 담뱃갑 동물 그림 반대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고, 이후에는 흡연 경고 그림이 부착됐고, 문제의 담배는 브랜드는 두 번 정도 패키지 리뉴얼이 있었던 것 같아. 지금도 고래는 고래더라. 



지난 갈피에서, 과거 고래잡이는 고래와 인간 간에 벌어지는 필사적 퍼포먼스였다고 했는데, 당시 서구 고래사냥꾼들 중에는 고래를 적대시하고 심지어 증오하는 경우도 많았나 봐. 하지만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의 고래잡이들은 또 달라서, 알래스카 축치족은 매해 고래의 영혼을 기리는 잔치를 벌이기도 했어. 그때마다 새로 지은 노래를 불렀다고 해. 노래를 지을 때는 등잔불을 전부 꺼두어야 했는데, 그 어둠 속 침묵을 부르는 이름도 있었대. 이 두 경우는 얼핏 상반돼 보이지만, 둘 다 직접적인 관계에서만 가질 수 있는 친밀함이 있다고 할까. 이후 거대 기기를 사용하는 포경업이 성행하면서 고래 뿐 아니라 작살로 잡는 전통적인 고래잡이도 사라져갔고, 현재는 고래사냥 자체가 복잡미묘한 문제가 되었어. 고래 보호 캠페인 등으로 그 소식을 접하게 되긴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 인간들에게 고래는 다른 세계의 존재거나 막연히 신비한 동물일 뿐이야. 그런데 공포가 동반되지 않는 신비란 뭘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고래도 사냥을 해. 오늘은 고래“의” 사냥에서 행해지는 폭풍 흡입, Gulf!


영어로 걸프(Gulp)란 말은 꿀꺽하고 크게 한 모금 삼키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나 또한 ‘목구멍에 쑤셔 넣다, 삼키다, 쭉 들이키다’라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고래를 탐구하는 고래학자(Cetologe)의 언어에서 이 말은 긴수염고래들의 먹이 섭취 동작을 뜻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가족을 이루며 참고래과보다는 짧은 수염을 가졌지만, 대신 아래쪽에 필요에 따라 엄청나게 늘릴 수 있는, 주름처럼 깊게 패인 특징적인 긴 골이 나 있다. 긴수염고래가 크릴새우 떼를 만나면, 녀석은 멱에 있는 제 먹이주머니를 거대하게 부풀리며 먹이 저장통으로 만든다. 잠시나마 녀석이 턱에 열기구를 물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턱이 수면 위에서 좍 벌어지면서 고래는 한꺼번에 엄청난 양을 한 모금 삼켜서-바로 이것이 걸프다!-수백 파운드나 되는 크릴새우나 다른 미세한 것들을 섭취한다. 턱이 다시 닫히면서 물은 수염을 통해 빠져나가고 플랑크톤은 걸려서 남게 된다. 이러한 것을 두고 걸프 동작(Gulp-Verfahren) 혹은 삼켜서 걸러먹기(Schluckfiltieren)라고 말하며, 이는 모든 긴수염고래과 고래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이다. 수십 억에 이르는 갑각류 물고기, 살파류, 연충들과 해파리들이 이렇게 해서 가야할 곳으로 인도되는 것이다. 바로 걸프를 통해서!


살아있는 것을 먹을 때의 문제점은 이것이 얌전히 접시 위에 놓인 채로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들이 도망가려는 시도를 하면서 일이 복잡해진다. 접시 위의 감자, 채소 그리고 고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간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굶은 채 잠자리에 들거나 아니면 도망가는 음식을 다시 한데로 몰아야 할 것이다. 긴수염고래가 이와 유사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자 녀석은 이 문제를 해결할 기발한 계책을 개발했다. 일례로 혹등고래는 크릴새우 떼의 아래로 깊숙이 잠수해 들어간 다음, 나선형을 그리며 위로 휘돌아 올라오면서 이 갑각류 주의를 빙빙 돈다. 그러면 이때 물거품이 생겨나 고리 모양을 이루게 된다. 크릴새우에게 이렇듯 부글거리는 것은 으스스한 것이기 때문에 녀석들은 가깝게 뭉쳐지며 밀착한다. 녀석들은 순식간에 만들어진 이 원통 모양의 공기방울 창살 안에 갇힌 꼴이 되어서, 그곳을 빠져나가기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녀석들이 능력껏 헤엄쳐 도망가려하기도 전에 걸프가 행해진다. 


거 참, 고래답군.


프랭크 섀칭, 『바다를 통한 시간여행』, 정재경, 오윤희 옮김, 영림카디널(2011), p.402~403 

(발췌/코멘터리 : 현지예)

<바다책_갈피>는 "바다숲 알리기"의 일환으로, 관련 책에서 발췌한 구절을 공유하는 코너예요. 무수히 많은 책들의 숲에서 바다, 섬, 바다숲 등에 관한 이야기를 건져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