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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소식』 2020 가을호 “신안 만인보”3회, 보따리 장수 김우돌씨(이혜영 정리)


결혼해서 큰딸 막 낳고 스물여덟 살 무렵이었다. 보따리 장사를 하는 친한 언니가 나주 남평에 간다길래, 나도 해본다고 따라갔다. 옷장에 넣는 소독약, 나프탈렌을 파는데 쉽지 않았다. 한 개도 못 팔고 나무 아래서 울고 있었다. 애기 떼놓고 와서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근처 파출소장이 나를 불러서 소독약 한 바구니를 사주더니 “관청으로 다니라”면서 이런저런 요령을 알려줬다. 그렇게 내 보따리 장사가 시작됐다. 남편은 원양어선을 탔고, 나도 뭐든 벌어야 했다.

 

소독약은 봄 한 철 장사라 다른 계절 팔거리도 고민해야 했다. 양말을 떼서 완도도 가고 신안도 갔다. 그 시절 신안 군청이 목포에 있었다. 군청 드나들면서 물건을 파는데 안면 익힌 공무원들이 섬으로 발령 받아 가더라. 그 직원들 궁금해 따라가다 보니 어느 틈에 나도 신안만 돌아다니게 됐다. 처음 들어간 섬이 증도, 임자도였다. 벌써 45년이 넘었다.

 

신안 사람들이 참 잘해줬다. 내가 새댁일 때 짐가방 들고 가면 동네어머니들은 ‘아따, 내 딸아 왔냐’ 이러면서 반겨줬다. 증도면사무소에 젊은 키다리 직원은 친절하고 뭐든 하나라도 꼭 사주곤 했다. 나중에 다시 만나니 박우량 군수가 되어 있더라(웃음).

 

신안이 교통이 사나웠고, 나는 뱃멀미가 심했다. 담배 얻어서 연기를 코에 좀 대면 견딜 만 했다. 예전엔 뱃시간도 길었다. 대여섯 시간 씩 타고 가면 도착할 즈음엔 거의 송장이 됐다. 주의보 뜨면 며칠씩 섬에 있었다. 낮에 물건 팔고 저녁에는 주로 혼자 사는 엄마들 집에 묵었다. 엄마들은 공짜로 잠 재워주고 밥도 줬다. 허기져도 미안하니까 ‘밥 먹었어요’ 하기도 했다. 할머니들께는 긴 때타월이나 건강식품이라도 꼭 챙겨드렸다.

 

흑산도에 가거도까지 다녔다. 흑산도 ‘50번 홍어집’ 언니네서도 자주 잤다. 아저씨가 죽고 혼자 사는 언닌데 나는 오전 9시 넘어야 관공서에 들어가니까 그 전에 언니 장사를 도와주기도 했다. 그럼 언니가 “아따, 니가 장사꾼이라 장사 잘한다” 그랬다.

 

맨 처음엔 007가방을 들고 시작했다. 관청이다 보니까 카메라도 팔리고 일제 소니녹음기, 산요면도기 등등 나름 고가품도 팔렸다. 이후 큰 가방을 양쪽에 들고 다녔고, 나중엔 바퀴 두 개짜리 수레를 끌고 다녔다. 이 멍청이가 운전을 못하니까 양손에 들고 밀고 다닌 거지. 나중에는 양말도 팔고 옷도 팔았다. 홍도에 커피 팔면서 혼자 살던 언니가 있었는데 어렵게 살면서도 내 물건을 제일 잘 사줬다. 3년 전에 돌아가셨다. 광주 전대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병문안을 다녔다.

 

지금은 짐가방을 항구터미널에 맡겨놓고 아는 사람들이랑 시간 보내기도 한다. 옛날에 비하면 놀러 다니는 셈이다. 오메가쓰리, 영양크림, 신발 옷 등등 원하는대로 주문 받아 사다준다. 내가 사이즈 다 아니까.

 

이 장사로 아이 넷을 다 키웠다. 젊을 땐 돌아다니느라 잘 몰랐는데 세월이 흘러보니 아이들 어릴 때 옆에 못 있어 준 게 미안하고 아쉽다. 내가 섬으로 일 갔을 때 남매끼리 양림동 덕림산 언덕에서 깻잎 따다가 된장에 찍어먹고 그랬다더라. 딸 아이 하나는 24살에 죽었다.

 

장사 같이 다닌 언니들하고 살고 싶어 신안 안좌면에 집을 알아보고 있다. 예전엔 장산면에도 잠시 지냈다. 그리고 내 주소지는 도초면이다. 코로나 땜에 섬 못 가니 답답하다. 얼른 가고 싶다.

 

『 신안소식』 2020 가을호 특집 “신안 만인보”3회에 실린 보따리 장수 김우돌씨(이혜영 정리)

(발췌 : 현지예)

<바다책_갈피>는 "바다숲 알리기"의 일환으로, 관련 책에서 발췌한 구절을 공유하는 코너예요. 무수히 많은 책들의 숲에서 바다, 섬, 바다숲 등에 관한 이야기를 건져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