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숲과 당제 

당숲

당숲은 오래 전 한 자리를 지켜온 나무가 여러 그루 모인 형태로, 제의 공간이 확장된 개념이다. 당숲에서 제를 모시는 경우 대부분 당산나무 앞에 돌로 제단을 꾸며서 상을 차리고 제를 올린다. 신안군의 당숲은 섬의 지리나 생태·기후 등 환경 조건에 맞게 자생하는 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수종은 팽나무와 소나무지만 구실잣밤나무나 귀엄나무, 느티나무가 있다. 육지와 가까운 섬에는 팽나무나 소나무가 고루 분포하고, 먼 바다에 있는 홍도나 흑산도에서는 온화한 기후에서 자라는 상록수과의 동백나무나 후박나무를 만날 수 있다.

당제

당제(堂祭)는 섬 주민들의 풍요와 안녕, 질병 치유, 안전 등 공동체의 바람을 담아 당신(堂神)이나 산신, 용왕신 등 다양한 수호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마을제이다. 당제는 오랫동안 세대를 거듭하며 전승되온 토속신앙으로 육지보다는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섬에서 더욱 발달한 것으로 확인된다. 당제는 정월 보름을 시작으로 초하루 또는 초사흗날 사이에 거행되는데, 마을 회의를 거쳐 2, 3명의 제관을 선정하였다. 이 때 선정되는 제관은 한 해의 우환이나 질병이 없는 깨끗한 몸으로, 집안에 임산부가 없어야 하고 부인이 월경을 하지 않는 등 엄격하고 까다로운 선정 기준을 충족해야 했다.

 당숲과 당제 

당숲

당숲은 오래 전 한 자리를 지켜온 나무가 여러 그루 모인 형태로, 제의 공간이 확장된 개념이다. 당숲에서 제를 모시는 경우 대부분 당산나무 앞에 돌로 제단을 꾸며서 상을 차리고 제를 올린다. 신안군의 당숲은 섬의 지리나 생태·기후 등 환경 조건에 맞게 자생하는 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수종은 팽나무와 소나무지만 구실잣밤나무나 귀엄나무, 느티나무가 있다. 육지와 가까운 섬에는 팽나무나 소나무가 고루 분포하고, 먼 바다에 있는 홍도나 흑산도에서는 온화한 기후에서 자라는 상록수과의 동백나무나 후박나무를 만날 수 있다.

당제

당제(堂祭)는 섬 주민들의 풍요와 안녕, 질병 치유, 안전 등 공동체의 바람을 담아 당신(堂神)이나 산신, 용왕신 등 다양한 수호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마을제이다. 당제는 오랫동안 세대를 거듭하며 전승되온 토속신앙으로 육지보다는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섬에서 더욱 발달한 것으로 확인된다. 당제는 정월 보름을 시작으로 초하루 또는 초사흗날 사이에 거행되는데, 마을 회의를 거쳐 2, 3명의 제관을 선정하였다. 이 때 선정되는 제관은 한 해의 우환이나 질병이 없는 깨끗한 몸으로, 집안에 임산부가 없어야 하고 부인이 월경을 하지 않는 등 엄격하고 까다로운 선정 기준을 충족해야 했다.

 신들이 별장에 머무르는 까닭은? 

첫째. 초령목이 신을 부른다!

신안군 흑산도와 제주도에만 서식하는 초령목은 희귀한 ‘수목’으로 나뭇가지를 신전에 꽂아 귀신을 부르는 데 쓰여 귀신나무로 불렸다.

둘째, 신들이 좋아하는 별장이 따로 있다?

신안에는 흑산도 진리마을처럼 바닷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경관을 가진 곳일수록 기운이 강해서 신들이 머무르기 좋은 섬마을 별장이 많다. 실제로 무당들은 신의 강한 기운을 좇아 흑산도 진리당을 많이 찾아 치성을 드린다.

셋째. 섬마다 다른 신들의 제사 음식

곡식이 귀했던 시절에도 마을 주민들은 신들을 위한 만찬에 부족함이 없도록 제사 음식에 공을 들였다. 홍도 2구에서는 귀한 생선으로 여겼던 홍어와 상어를 제사상에 올렸고, 안좌 반월도는 꿩고기를, 박지도에서는 송아지를 잡아 제물로 바쳤다.

넷째. 섬+숲+사람. ‘3人’이 한데 어우러지다

마을 공동체의 뜻과 마음을 담아 기원하는 당제와 더불어 숲이나 산에서 제사를 모시는 당산제, 어민의 풍어와 안전을 바라는 용왕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수사자(水死者)의 넋을 기리는 넋건지굿, 등 육지와 바다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제사와 굿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신안군이다. 최덕원의 「다도해 당제」란 책에서는 신안군의 당제가 매우 활발했으며, 333개 마을에 당이 120개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조사 지역

신안군 장산면 마진2리 율도

조사 날짜

2020. 11. 16.

제일(祭日)

정월 보름

제신(祭神)

당숲, 당집, 당샘, 백야도신(白也島神)

인터뷰 대상

김삼희 님(마을 주민, 48세)/남성

한진심 님(마을 주민, 82세)/여성

김유안 님(마을 주민, 80세)/남성

마을 소개

〇 장산면 율도는 섬에 밤나무가 많았고, 지형이 밤처럼 생겼다 하여 밤섬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700년대 초 김해김씨가 해남 문내면에서 장산도를 향해 배를 타고 오다가 이 섬에 잠깐 정박하였는데 안주할 곳이라 하여 정착하였다.

 

〇 섬의 북쪽 해안은 급경사로 수심이 깊어 1980년대에 전복양식이 활발했다. 섬에 논이나 밭이 적어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갯바위에서 톳을 채취하거나 해태, 다시마 양식을 한다. 1988년 신안군에서 발간한 「마을由來誌」에는 16가구에 총 92명의 주민이 거주했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30 년이 지난 지금은 15가구, 21명이 사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제 과정

〇 정월 보름날 당에 올라서 삼일동안 제를 모셨다. 마을 회의를 통해 주민 가운데 생시가 맞는 남성 두 명을 제관으로 선정하였다. 당숲에 가기 전에 마을의 당샘에 고인 물을 모두 빼고 깨끗이 청소를 했다. 그리고 제사 음식 재료를 가지고 당에 올랐다. 당집은 섬에서 가장 높은 마을 뒷산 정상에 지었는데 자연재해로 부서져서 몇 번 보수를 했다. 제사 음식은 제관들이 직접 준비했는데 당집에 있는 작은 절구를 두고 밥과 술, 떡을 지었다.

 

〇 제사상에 술은 뺄 수 없는데 이 섬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고두밥을 만들고 발효를 시켜서 막걸리를 냈다. 준비할 수 있으면 최대한 정성을 들였다. 과일은 섬에서 나는 게 많지 않아서 별도로 약간씩 준비했다. 당집 서까래에 ‘당미(堂米)’라 하여, 한 줌 가량의 쌀을 천으로 싸서 매달아 놓았다.

당제 특성

〇 작은 섬이지만 믿음이 강한 주민들이 최근까지도 당제를 지내왔다. 섬마다 기독교를 비롯한 신흥 종교가 정착한 데 반해 율도에는 이렇다 할 종교시설이 없다. 민속 신앙인 당제가 외부 종교에 의해 명맥이 끊긴 경우를 수없이 봐왔기에 매우 독특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중단 이후 주민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여 수풀이 우거지고 몇 그루의 고목(古木)이 비바람에 쓰러진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당숲과 당집이 잘 보존되어 있다.

 

〇 주민들은 율도 ‘당신(堂神)’의 기운이 강력해서 짐승의 기운을 압도한다고 전한다. 그래서 섬에는 유난히 산새를 비롯한 들짐승, 집에서 키우는 가축이 거의 없다. 일부 주민들은 해마다 당제를 잘 모시던 과거에 당집과 가까운 곳에서 죽어 있는 새나 들짐승을 종종 발견했다고 한다.



조사 지역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 진리

조사 날짜

2020. 10. 30.

제일(祭日)

섣달 그믐날-정월 초사흘까지

제신(祭神)

당할아버지·당할머니·쥐·용왕

인터뷰 대상

1) 문종남 님(마을 주민, 83세)/남성

2) 문은님 님(마을 주민, 67세)/여성

마을 소개

〇우이도는 행정구역상 신안군 도초면에 속한 섬이다. 섬의 중심에 자리한 상산(봉)을 중심으로 해안가에 각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1구인 진리와 2구 돈목·성촌마을 외에도 부속섬인 3구의 동소·서소우이도(동리, 서리)로 구성되어 있다. 「2019 신안군 인구통계연보」에 따르면 138가구에 213명의 주민이 산다.

 

〇우이도의 북서쪽에 자리한 ‘대초리’ 마을의 산 정상에서 우이도의 산을 바라보면 그 형태가 소의 귀를 닮았는데 여기서 우이도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마을마다 당제를 모신 것으로 추측하지만 기록에서는 진리와 서소우이도에서 당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당제 과정

〇우이도에서는 음력 섣달그믐에 상당에서 제를 지내고 하당과 쥐당에서 제를 지냈다. 삼일 만에 내려와 바닷가 모래사장의 ‘장굴’에서 용왕제를 지냈다. 상산봉 자락 아래 진리마을과 인접한 뒷동산 정상부에 당숲과 당집이 있다.

 

〇당집은 웃당과 아랫당으로 구분되어 있고, 당집 둘레로 ‘ㅁ’자형의 돌담이 쌓여 있다. 당제 터 주변으로는 고목(古木)이 다수 자리하여 숲을 이루는데 구실잣밤나무와 팽나무가 많이 자생한다.

당제 특성

〇‘상당’ 뒤쪽으로 길게 쌓인 돌담이 늘어서 있는데 성촌마을의 우실, 진리 ‘띠밭재’의 ‘성재담’과 그 형태가 유사하다. 우실 외에도 돌담과 당숲이 당집 둘레로 울타리처럼 자리하고 있다. 비바람으로부터 당집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써, 돌담과 우실, 당숲의 위치나 형태는 주목할 만 하다. 섬의 지리·환경의 성질을 반영한, 다른 섬과는 다른 특수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추측한다.

 

〇진리에서는 당제 외에도 마을의 질병 치유, 무사 안녕, 풍어를 위해 집집마다 목포 등 육지에서 무당이나 점쟁이를 모셔와 굿을 벌였다. 해양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섬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넋을 기리는 ‘넋건지굿’과 더불어 병자의 치유, 망자의 혼을 위로하는 ‘고풀기굿’ 등이 행해졌다. 교회가 정착하기 전에 마을 주민 사이에서 당제와 굿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을 것으로 추측한다.



조사 지역

신안군 흑산면 홍도(2구) 석촌마을

조사 날짜

2020. 10. 21.

제일(祭日)

정월 초하루-초사흘

제신(祭神)

당집, 당숲,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갯제

인터뷰 대상

1) 김은길 님(마을 주민, 76세)/남성

2) 김광식 님(마을 주민)/남성

마을 소개

〇 석촌마을은 행정구역상 홍도2리이다. 홍도의 북서쪽 해안가에 조성된 마을로 섬에 처음 사람이 정착한 곳으로 전해온다. 현재 거주자는 전주이씨가 많다. 곶(串)의 끝부분에 마을이 위치한다하여 ‘석기미’ 또는 ‘석촌’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1988년 『마을 由來誌』의 인구 현황표에 따르면 54가구, 263명의 주민이 거주했다.

 

〇 「2019 신안군 인구 통계연보」를 기준으로 53가구, 107명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홍도 1구에서 2구로 가려면 섬의 영산인 ‘깃대봉’ 탐방로를 걷거나 여객선 도착시간에 맞춰 1리에서 2리로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면 갈 수 있다.

 

〇 「2019 신안군 인구 통계연보」를 기준으로 53가구, 107명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홍도 1구에서 2구로 가려면 섬의 영산인 깃대봉 탐방로를 걷거나 여객선 도착시간에 맞춰 1리에서 2리로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면 갈 수 있다.

당제 과정

〇홍도 2구 석촌마을의 당제는 중단된 지 약 50여 년쯤 된다. 섣달 그믐날에 올라서 삼일동안 제를 지낸 후 초사흗날 당을 내렸다. 마을 회의를 통해 선정된 제관은 목욕재계를 하고 특별히 몸 관리에 신경 써야 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마을 회관 뒤에 있던 사당에서 제수품을 준비해 웃당에 올랐다.

 

〇당제를 지내는 시기는 겨울에서 봄 사이로 추운 날씨였지만 주민들은 마을 공동체의 결속과 전통 문화 전승을 위해 정성을 들였다. 돼지를 잡아 돼지 머리를 제사에 바쳤는데 떡과 과일뿐만 아니라 섬 인근의 바다에서 나는 상어, 홍어 등 진귀한 수산물을 준비하여 성대하게 치렀다. 제를 마치고 선창으로 자리를 옮겨와 풍어제와 ‘거리제’, ‘헛제를 연행하고 마을 잔치를 벌였다.

당제 특성

〇홍도 2구의 석촌마을 당집은 홍도 1구와 그 형태와 재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당숲의 수종도 비슷한데 구실잣밤나무와 동백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이 자생하고 있다. 다만 수목(樹木)의 보존상태가 좋아서 고목(古木)이 1구보다 많다. 2구의 당림(堂林)은 상록활엽수 24종, 낙엽활엽수 30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〇당제가 중단된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현재까지 당숲이 잘 보존된 요인은 과거 제사를 모셨던 이력이 크다. 교회가 자리하면서 상당수의 주민이 기독교 신자가 되었지만 당숲은 여전히 신성하고 영험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조사 지역

신안군 흑산면 홍도(1구) 대촌마을

조사 날짜

2020. 10. 20.

제일(祭日)

정월 초사흘

제신(祭神)

당숲, 당집, 산신,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인터뷰 대상

이동석 님(마을 주민, 83세)/남성

마을 소개

〇 흑산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20km 떨어진 홍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중심지면서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마을의 북쪽에는 해발 360m의 ‘고치산이 솟아 있고 홍도 1구 인근에는 ‘양산봉’이 놓여 있다. 참고 문헌에 따라서 마을 지명이 조금씩 다른데 홍도 1, 2구를 ‘죽촌’과 ‘대밭밑’, ‘석촌마을’로 부르는가 하면 면담에 응한 이동석 어른은 ‘대촌’(大村), ‘죽전’(竹田), ‘석촌’(石村)이라는 고유 지명으로 마을을 칭했다.

 

〇 흑산면의 지질이 대부분 화강암석인데 반해 홍도는 규암석이다. 울창한 상록수림이 양산봉과 깃대봉에 넓게 펼쳐져 있고 섬 주변으로 많은 암초가 많아 다양한 바다생물이 서식한다. ‘걸낙’ 방식의 흑산도 홍어 잡이가 주로 홍도 해상에서 이루어지는데 가거도나 태도 등지에서 잡히는 홍어보다 맛이 담백하고 살이 두꺼워서 같은 흑산권이라도 홍도 홍어를 으뜸으로 친다.

 

〇 1988년 『마을 由來誌』의 ‘홍도 편’에 실린 인구 통계에 따르면 140가구, 774명의 1, 2구 주민이 거주하였다. 「2019년 신안군 인구통계연보」에는 544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섬에 비해 인구 감소율이 가장 적다.

당제 과정

〇홍도 1구의 대촌마을은 당제 거행 날짜에서 차이가 있지만 정월 초하루에 시작하여 정월 초사흗날 당을 내리는 2구와 같다. 현재 홍도관리사무소 뒤쪽으로 난 ‘양산봉’ 산책로 중간에 당집이 있으며 제사는 주로 당집 주변의 당숲에서 이루어졌다.

 

〇공간이 당집에 한정되지 않고 당숲으로 확장된 점은 당제의 성격이 산신제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7년 신안군에서 발간한 「신안군지」의 지면에서는 당제가 끝나면 다음날 낮에 선창에서 풍어를 기원하는 둑제를 지내고 홍도의 수호신인 거북바위로 가서 용왕허수아비를 띄워 재액을 물리치는 의례를 행했다고 소개한다.

당제 특성

〇홍도1구의 당제는 당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격(神格)’의 비중을 당숲의 나무와 돌에 두어 제를 지낸 특성을 가진다.

 

〇당숲에 서식하는 나무의 수종은 상록수로 홍도의 생태환경을 잘 반영한다. 1구의 당숲(堂林)은 상록활엽수가 16종, 낙엽활엽수는 27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사 지역

전남 신안군 흑산면 진리(1구)

조사 날짜

2020. 10. 20. (화)

제일(祭日)

정월 초하루

제신(祭神)

소저아기씨, 상궁부인, 제석님, 산중처사님, 도령, 당할머니, 용신당, 당샘

인터뷰 대상

임종인 님(마을 주민, 84세)/남성

마을 소개

〇 흑산도 진리는 흑산면사무소가 소재하는 행정의 중심지이다. 마을은 1구와 2구로 나뉘어 있는데, 지형이 동쪽으로 해안을 두고 동·북쪽을 제외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에는 해발 226m의 상라산에 가로 놓여 있고, 남쪽에는 칠락산이 솟아 있다.

〇 진리와 읍동의 자연마을로 형성된 이곳은 본래 행정구역상 지도군 흑산면에 속하였는데, 1969년 분군 이후 신안군 흑산면으로 편제되었다. 과거 조선 시대에는 흑산진(黑山鎭)이 설치되어 군사적 요충지로써의 역할을 했는다. 진리는 ‘진말’, ‘진마’ 또는 ‘진촌’, 대진리로 불리기도 했다.

〇 1988년 신안군에서 발간한 「마을由來誌」에 따르면 전체인구가 1,157명에 달했지만, 「2019년 신안군 인구통계연보」를 보면 555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당제 과정

〇 진리 당제는 정월 초하루에 올랐다가 초이튿날 내렸다. 추운 계절에 이틀간 진행되니 당제를 모시는 제관의 역할은 상당히 어려웠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제관으로 선정되길 꺼려했는데, 선정된 이는 많은 노임을 받고 제를 올렸다.

〇 진리당은 ‘신들의 정원’으로 불리는 진리당은 당숲과 당집, 용신당으로 조성되어 있다. 당집에는 신을 그린 벽화가 있었는데 당제가 끝난 후 주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주민들은 이 벽화를 보려고 진리당을 찾았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방화로 당집에 불이 나면서 벽화가 모두 훼손되었다.

〇 당제와는 별도로 날을 받아 갯가에서 임시로 제청을 꾸미고 무당을 모셔와 당굿을 거행했다. 갯제와 용왕제 형식을 따라 제액을 바다에 보내는 의미로써 허수아비에 작은 배에 실어 띄워보냈다.

당제 특성

〇 당신(堂神)은 주민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크게 ‘7위신’(位神)과 5위신으로 나뉜다. 전자는 시계방향으로 ‘성주독’, ‘당각시’, ‘도령’, ‘상궁부인’, ‘영감’, ‘부인’, ‘미륵신’ 등 일곱 신을 그린 벽화 그림이다. 후자는 전자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성주독’, ‘당각시’, ‘늙은 부인’, ‘무섭게 생긴 영감’, ‘당도령’으로 좀 더 세밀하게 묘사되어 달리 표현된다.

 

〇 흑산 항구와 내·외 영산도 등 넓은 바다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갯가에 위치하여 신의 기운이 강한 곳으로 손꼽힌다. 그래서 지금도 전국의 많은 무속인들이 신내림을 받거나 치성을 드리려고 찾는다.

 

〇 예전에는 흑산초교 앞 도로까지 바닷물이 들었다. 육지에서 옹기를 실은 배들이 정박하여 옹기장수들이 마을을 다니면서 옹기를 팔았다. 여기에 선박을 관리하고 심부름을 도맡는 나이 어린 화장이 한 명씩 딸려왔는데, 이런 옛 이야기는 구전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진리당의 설화 가운데 ‘총각 화상 설화’의 내용과 유사한 점이 많다. 설화의 기원이 흑산도 진리 포구의 실재했던 모습과 생활상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조사 지역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대풍리(3구)

조사 날짜

2020. 09. 16

제일(祭日)

섣달그믐

제신(祭神)

쇠붙이, 당숲, 당샘, 허수아비제, 거리제, 걸궁

인터뷰 대상

고승호 님(대풍리 마을이장, 70세)

마을 소개

〇 대풍리는 가거도의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1988년에는 인구가 319명에 달했지만 『2019년 신안군 인구 통계연보』에 따르면 42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들이 저마다 가꾸는 약간의 텃밭이 있지만 농사를 지을만한 땅이 적다. 그래서 미역이나 톳을 채취하여 말려서 상품으로 팔거나 낚싯배를 운영하여 손님을 맞이하는 것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당제 과정

〇 대풍리의 당제는 섣달그믐에 마을 초입의 당숲에서 이루어졌다. 당숲 주변으로 돌담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졌다. 20~30cm 크기의 쇠붙이를 신주로 모셨다고 전해진다. 당숲에는 당샘이 있는데 샘물의 맑은 정도에 따라서 당제를 마치는 날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제일인 섣달그믐에 당에 올라 빠르면 하루만에 마치기도 하지만 길게는 삼일 간 오르내리기도 한다.

 

〇 당숲에서 제사를 마치고 나면 마을 앞 갯가에 나무 제단을 쌓아 불을 피워 올리고 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농악을, 다른 주민들은 광대놀이를 하거나 탈을 쓰고 남장여장 행세를 하기도 했다. 이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잡귀를 물리치면서 위로하는 거리제와 헌식으로 과정을 마무리 하였다.

당제 특성

〇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거리제를 연행하고 음식이나 돈을 수고비로 받았는데, 마을 주민 가운데 형편이 어려운 이에게 나누어 주었다. 마을제 성격의 당제를 통해 이웃과 더불어 사는 마을 공동체 본연의 가치를 실현한 점은 그 의미와 가치가 크다.

 

〇 제관은 여느 섬마을과 마찬가지로 생시와 한 해 운수를 따져보아 선정했는데 대리에 비해 마을 주민이 적어서 가능하다면 여성도 선정되어 제를 모시도록 했다. 당샘의 상태에 따라서 제를 모시는 날이 하루에서 삼일까지 늘어났다.

 

〇 상당히 추운 날씨에 진행되어 제관으로 선정되기를 꺼리는 주민이 많았다. 하지만 제관으로 선정되어 제를 모시면 마을 앞 갯가의 당여에서 1 년간 미역이나 김, 톳을 채취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조사 지역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대리(1구)
조사 날짜 
2020. 09. 15. - 09. 16.
제일(祭日)
정월 초하루
제신(祭神)
당집, 당할아버지, 산신, 동자, 멍씨할멈, 잡신 등
인터뷰 대상

고덕술 님(대리마을 노인회장, 78세), 조종단 님(75세) / 조사실 님(마을 주민, 78세), 최성심 님(마을 주민, 76세)

마을 소개

대한민국의 최서남단에 위치한 가거도는 흑산면에 속해 있다. 기암괴석과 후박나무 이루어진 섬은 ‘사람이 가히 살만한 곳’이라고 하여 가거도라는 지명이 생겼다. 목포항에서 쾌속선이 다니는데 흑산도를 경유하면 4시간, 가거도로 곧바로 가면 3시간이 소요된다. 약 500여 명이 사는 섬은 크게 ‘대리’, ‘항리’, ‘대풍리’ 등 3개 마을로 나뉜다. 섬은 중국과 접경하고 있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과거 주민들은 섬에 밭이 조금씩 있어서 보리나 고구마 농사를 지었다. 생업을 꾸리기에 어려움이 컸지만 ‘삼부 토건’이 1960년대에 방파제 공사를 시작하면서 주민들에게 일자리가 생겼다. 한편 일부 주민들은 1960, 70년대에 한약재로 쓰이는 후박나무 껍질을 벗겨 파는 농사를 지었다. 품질이 좋아서 값을 높게 받았다. 어업은 멸치잡이와 조기잡이가 활발하여 한 때 6, 7척에 이르렀지만 어부를 구하기 어렵고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지금은 2척 가량이 조업에 나서고 있다.

당제 과정

가거도 당제는 원해(遠海)의 특징이 뚜렷한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연·근해의 유교식 도제, 당제와는 달리 토속신앙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당신(堂神) 가운데 한 분인 ‘멍씨할멈’은 실존인물로 이 섬에 사는 사람이라면 물이라도 부어놓고 공을 빌면 좋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혈서로 남겼다. 주민들이 이를 받들어 명맥을 이었다.

가거도는 물이 잘 나는 섬으로 유명하다. 대리에만 10여 곳의 우물이 있었다. 지금은 환경 변화와 인구 감소로 일부만 쓰인다. 항리와 대풍리로 나뉘는 ‘삿갓재’ 인근의 ‘대석재’에 물이 나오는 샘이 있어서 상당으로 꾸미고 마을에 하당을 두어 제를 모셨다.

당제 특성

대리에서는 당제를 거행한 후 성씨별로 ‘씨족제’를 모셨다. 고 씨, 조 씨, 최 씨 등 같은 집안사람이 모여 저마다 의 선산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와는 별도로 마을에 사는 주민 가운데 자식이 없는 사람들만 적어놓은 ‘무손대사’라는 책을 참고하여 마을에 굿터를 두고 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당제를 모신 후에는 마을 앞 몽돌해변에서 갯제를 지냈다. 한편 당제에 참여한 제관들에게는 가거도 ‘항리 마을’ 앞에 있는 ‘간여’에서 1 년간 김이나 미역을 채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조사 지역
전남 신안군 안좌면 대리 큰마을
조사 날짜
2020. 08. 25.
제일(祭日)
정월 보름
제신(祭神)
당집, 당산나무(소나무)
인터뷰 대상
박한배 님(마을 주민, 80세)/남성
마을 소개

안좌도 대리에는 이씨(李氏)와 진씨(眞氏)가 처음으로 마을에 정착했다고 전하지만 1660년대에 처음 들어와 마을에 정착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안좌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는 뜻에서 ‘큰몰’, ‘큰말’, ‘대리’라고 불렸다. 안좌면의 대표적인 중심 마을로 1988년 「마을由來誌」에 따르면 총 163호로 남·여를 합하여 705명이 살았다.

대리에는 남근석과 관련된 전설이 구전으로 전해내려 온다. 옛날에 중국과 교역하는 선박을 영접하기 위해서 촛불형태의 석물을 세웠다는 설이 첫 번째고, 마을 뒷산에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음(陰)바위가 있어서 부녀자들이나 처여들이 이 바위를 쳐다보면 바람을 피운다 하여 마을 주민들이 양바위를 깎아 세웠다는 설이 두 번째다.

1988년 신안군에서 발간한 『마을由來誌』는 대리의 ‘신당(神堂)’을 옮긴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1870년 안창국교 앞에 있던 신당은 주민과 행인들로 붐비고 주위가 불결하다고 판단되어 주민들이 지금의 안산 중턱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학교 앞이 마을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당제 과정

안좌도 대리 당제는 연·근해의 유교식 제의 성격이 짙다. 당제를 지내기 전에는 잡귀, 잡신의 침범을 막기 위해 집집마다 사립문 앞에 황토를 한 줌씩 원형으로 모아서 누구나 식별할 수 있도록 놓았다. 제관은 집안에 임산부나 월경이 든 여성이 없는 이로 선정했다. 마을 회의를 거쳐 선정된 제관들은 목욕재계를 하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는 데에 조심했다.

지금의 화석광물박물관(구 안창초교) 앞에 있는 소나무를 당산나무로 모셨다. 당제를 지낼 때는 임시 천막을 세우고 음식을 장만하여 제를 올렸다. 하지만 평소 행인의 왕래가 잦아 신성한 공간이 불결해진다고 걱정 하는 주민들이 많아졌다. 이에 따라 회의를 거친 후 안산에 당집을 새로 짓고 ‘상당(上堂)’으로 삼았다. 이후 정월 초삼일에 선출된 제관들은 마을의 안녕과 질병 퇴치를 기원하며 당집에서 제를 올렸다.

당제 특성

마을의 앞산과 뒷산에 꿩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서 당제 제사 음식으로 꿩을 잡아 꿩국을 올렸다. 반월도 주민들이 닭을 준비하지 못하면 산꿩을 잡아 썼다는 점과 내용이 유사하다. 당집은 마을에서 길 건너편의 안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방 두 칸으로 구성된 당집의 대들보에는 한자로 ‘단기 4303년(서기 1970년) 경술(년)2월 27일 계축오시’라는 상량문이 쓰여 있다. 약 5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집의 흔적이 남아있는 점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그간의 풍파로 지붕과 외벽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당숲의 나무들이 가옥을 둘러싸고 있어서 붕괴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사 지역
전남 신안군 안좌면 박지리 배기마을
조사 날짜
2020. 08. 13.
제일(祭日)
정월 보름
제신(祭神)
당숲, 당산나무(팽나무), 당샘
인터뷰 대상
정순심 님(마을 주민, 87세)/여성, 정송희 님(마을 주민)/여성
마을 소개

안좌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5km 떨어진 박지도는 ‘박’, ‘바가지’처럼 생겼다 하여 ‘바기섬’, ‘배기섬’ 또는 ‘배기’, ‘백일리’로 불렸다. 신안군의 『마을由來誌』에 따르면 마을 뒷산에 상당과 하당이 있으며 매년 정월 보름날에 마을의 안녕과 질병 퇴치를 위해 상당(上堂)에 제를 올린다.

1988년 신안군에서 발간한 『마을由來誌』에 따르면 박지도에 사는 주민이 135명이다. 하지만 「2019년 신안군 인구통계연보」에서는 26명이 사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쌀이 귀했던 시절에는 당산의 상당한 면적이 논과 밭으로 개간되었다. 당산 중턱과 산자락에는 평평한 지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섬에서 나는 물이 맑고 좋아 소출량이 마을 특이사항으로 1982년도에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됐는데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퍼플교를 따라 박지도에 도착하면 초입의 정자 한 켠에 있는 마을 표지석과 범죄 없는 마을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당제 과정

박지도 섬 당제는 매년 정월 보름에 당산 중턱에 있는 당숲에서 거행됐는데, 주민들이 돌담을 쌓아 숲의 안팎을 구분하였고 당산나무인 팽나무 앞에 석제 제단을 꾸몄다. 마을 회의를 거쳐 생시와 운수를 면밀히 살핀 후 몸과 마음이 정갈한 남성을 제관을 선정 했다. 제물은 밥과 술, 떡 등 일반적인 제사 음식으로 준비하되 송아지를 잡아 바쳤다. 송아지를 목욕시키고 당숲으로 끌고 올라가는데 송아지가 목적지까지 잘 올라가면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이 있다고 믿었다.

당제를 지내지 않는 해에는 꼭 섬에 쥐와 새가 들끓어 농작물을 해쳐서 흉년이 들었다. 그래서 신의 영험함을 믿고 제사를 거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980, 90년대에 일자리를 찾아 섬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당제가 간소화되다가 중단되었다. 인터뷰에 응한 정순심 어른의 말씀을 빌리면 몇 해 전까지도 마을 이장님이 닭을 잡아 가볍게 제를 올렸다고 한다.

당제 특성

제주(원당주, 부당주, 칼제, 헌관)는 정월 보름날 첫닭이 울면 송아지를 제물로 바쳐, 제를 올리는 당제가 현재(1988년 집필 당시)에도 행해졌다. 당산에 있는 900년 된 우물은 당샘으로도 불리며 제물을 준비하는 데 쓰였다.

정월 보름에 당제를 모시기 직전까지는 당숲에 새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울었는데, 밥을 해놓으면 거짓말처럼 새소리가 나지 않아 조용해졌다. 제사에 쓰인 제기나 그릇은 행인의 눈에 잘 띠지 않는 곳에 고무 통을 두어 보관하였다.

조사 지역 
전남 신안군 안좌면 반월리 안마을
조사 날짜 
2020. 08. 12.
제일(祭日)
정월 보름
제신(祭神)
당숲, 당산나무, 당샘
인터뷰 대상
장종언 님(마을 주민, 71)/남성, 신해숙 님(마을 주민, 69)/여성
마을 소개

반월도는 1670년 경남에서 ‘인동 장씨’ 후손이 입도하여 마을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으로 발전하였다. 섬 지명은 지형이 반달(月)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안마을은 퇴촌과 달리 마을이 커서 ‘큰몰’, ‘대리’, ‘안동네’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토촌 마을과 합하여 반월로 불렸으며 무안군 기좌면에 편입되었다가 1969년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1988년에는 인구가 420여 명이었지만 『2019년 신안군 인구 통계연보』에 따르면 103명으로 약 300여 명이 줄어들었다. 마을 뒷산(어깨산, 대덕산) 너머에 제법 큰 농토가 있다. 집안 대대로 세대를 거듭하면서 대물림 되는 ‘제위답’인데 여러 사람이 나누어 소유했다. 수확한 쌀은 제사를 지낼 때 젯밥으로 썼다.

당제 과정

반월도 당제는 안마을 초입에 있는 당숲에서 정월 보름에 하루 동안 지냈다. 당숲과 당산나무, 당샘을 신격(神格)으로 여기고 모셨다. 공간의 안과 바깥을 구분하도록 돌담을 두르고 당산나무 앞에 꾸며진 석제 제단에 상을 차렸다. 제물은 주로 돼지고기와 닭고기, 술, 밥을 올렸는데 닭을 구하지 못하면 섬에서 서식하는 산꿩을 직접 잡아 대신했다. ‘꿩몰이’는 주민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서로 번갈아가며 소리를 질러 꿩을 모는 방식이다. 깃발을 흔들어 놀라게 하거나 겁을 주기도 하는데, 시간이 지속되어 제 풀에 지친 꿩이 갯벌이나 땅에 떨어지면 그 때 잡는다.

제의를 거행하는 기간에 당숲 주변에 1m 간격으로 황토를 한 줌씩 놓아서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하였다. 또 볏짚으로 세끼를 꼬아 당숲 주변으로 금줄을 쳤다. 제관 선정은 마을 회의를 통해 세 명을 선출하는데, 제관들은 한 달간 목욕재계를 하고 여성과의 잠자리, 육고기 취식을 피하는 등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는 데 정성을 다 했다. 당제를 모시기 전에 주민들이 저마다 바라는 바를 소지에 적어서 제관에게 전달한다. 제관은 제사를 모시고 이를 불에 태워 하늘에 올리는데 같은 소지라도 잘 타서 올라가는 경우와 타다 말고 떨어지는 것이 있다. 두 경우를 놓고 사람들은 길(吉)·흉(凶)을 점치기도 하였다. 제를 모두 마치면 주민으로 구성된 풍물패가 마을을 돌며 잡귀를 물리치는 ‘걸궁(乞窮)’을 했다.

당제 특성

당숲에는 팽나무가 주종을 이루어 자생하는데, 지난 2013년 ‘산림청’과 ‘유한킴벌리’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제 14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의 가치를 인정받아 ‘공존상’을 수상했다.

해마다 봄이면 당숲 안팎으로 달래나물이 많이 나는데 주민들은 여전히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하여 채취하기를 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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